[작은 기업을 위한 브랜딩 - 첫 번째 이야기, 가치] 당신이 일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수석에 앉으니 새 차 냄새가 가득했다. 운전석에 앉은 부사장님은 얼마 전에 폐차를 했다고 했다. 5년 만에 30만 킬로미터를 달린 결과였다. 하루에 서울 부산을 두 번 왕복한 적도 있다고 했다. 중국 출장 가서는 울면서 거리를 헤맨 적도 있다고 했다. 높은 건물에 오르면 뛰어내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대기업 퇴사 후 10년 만의 일이었다. 날마다 이어지는 저녁 접대에 질린 나머지 그는 창업이라는 선택을 했고 이제 막 투자를 받으며 겨우 한 숨 돌리던 참이었다. 우연히 오래된 내 명함을 발견했고 그렇게 새로운 제품의 네이밍을 의뢰했다. 그렇게 만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구나 하는 자조와 알 수 없는 공감의 마음이 교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기는 의문, 그는 왜 그 어렵다는 창업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지난 수년 간 적지 않은 ‘작은 기업’의 사장님들을 만났다. 다양한 업종, 다양한 배경을 가진 그들을 만날 때마다 늘 ‘배우는’ 기분이었다. 10년 가까이 브랜드에 관한 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글을 썼다. 사이트를 기획하고, 페이스북을 운영하고, 블로그 포스팅을 해왔다. 이른바 글과 말로 마케팅을 하는 ‘버벌브랜딩(verbalbranding)’ 일을 해왔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40대 중반에 들어서 1인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다양한 회사를 만나 함께 일하고 있다. 하지만 책으로 배운 그 얄팍한 지식으로 그들을 ‘컨설팅’한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브랜드 스토리 파인더’라는 새로운 직업명?을 만들어냈다. 작지만 강력한 브랜드들을 글과 말로 세상에 소개하고 알리는 일, 그것이 내가 만들어낸 새로운 일이자 직업이었다. 지금도 그 일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사장님으로부터 일을 의뢰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내가 만난 다른 사장님들의 경험이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대 입구의 지구당, 이 집은 혼자 밥을 먹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천국으로 스스로를 특화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먼저 돈을 벌어야죠. 매출이 인격 아닙니까?
굳이 자본주의를 운운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매일이 전쟁이다. 매월의 월급날엔 저격수의 표적이 된다. 사냥꾼 앞의 사슴 신세가 된다. 거창한 전략보다 하루하루의 생존이 절박한 그들이다. 사업을 계속하려면, 직원들의 월급을 주려면 매일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제품을 팔고 웃으며 서비스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철저하게 외로운 일이다. 이분들을 만날 때마다 두세 시간이 훌쩍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런 이야기를 직원에게도 가족에게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장님들에게 ‘브랜드’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곤 한다. 기술의 발달로 제품 간의 차이는 고만고만해졌다. 거의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영역에서 그렇다. 반대로 시장은 더 치열해졌다. 저성장은 일상이 되었고 불황은 오래된 일이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한다. 고객들의 취향은 더욱 다양해졌다. 여러모로 고달픈 시장이다. 그 속에서 ‘브랜드’가 필요한 이유를 말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말해야 한다.

브랜딩의 목표는 차별화입니다
이 한 마디로 설명을 끝내야 한다. 고만고만한 제품들 속에서 선택을 받으려면 ‘남달라야’ 한다. 굳이 이 작은 회사의 제품을 사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해야 한다.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사장님의 제품과 서비스를 ‘왜 선택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제품력은 기본이다. 하지만 다른 제품도 그 정도 기능은 모두 가지고 있지 않나. 하지만 개성 강한 이 시대의 고객들은 꼭 기능만 보고 제품을 사지 않는다. 회사와 창업자의 철학, 유니크한 컨셉, 매력적인 스토리를 보고 제품을 구매한다. 애플이나 발뮤다를 보라. 비슷한 제품보다 두 배, 세 배의 비용을 치르면서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제품의 기능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경쟁사 보다 못한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나의 말을 찬찬히 듣던 사장님이 비로소 입을 연다.

대다수의 사업이, 시장이 레드오션이다. 어떻게든 튀어야 한다.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

나도 알아요. 그런데 말이지요. 시간이 걸리잖아요.
대화는 여기서 잠시 소강 상태를 맞는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당장의 매출과 생존이 급한 사장님들도 브랜딩의 중요성은 알고 있다. 다만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장님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좋은 얘기 들었다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이야기해보자는 분들과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는 분들이다. 첫 번째 사장님들께는 최선을 다해 마무리를 한다. 그러다가 반 년이 지난 후에 나를 찾는 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장님들께는 진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브랜딩을 위해 가장 필요한 작업, 이 글은 바로 그런 부분에 관한 이야기다.

도대체 이 고된 사업을 왜 시작하신 건가요?
이건 의례적인 질문이 아니다. 진짜로 궁금해서다. 작은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개인 역량은 탁월하신 분들이다. 그 분야에 대한 충분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데다 ‘창업’이라는 모험을 감행할만큼 용감한 분들이다. 물론 첫째는 돈 때문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서다. 누구 밑에서 일하는데 영 익숙치 않아서다. 회사에서보다 더 벌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흐르다보면 진짜가 나오기 시작한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다. 사업을 시작한 당시에는 미처 몰랐던,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알게된 것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직원과 동업자와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보람’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과 자신의 회사가 지닌 ‘쓸모’를 깨닫게 된다.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과정이 주는 ‘마력’ 같은 것이다. 매출과 성장은 단지 그것의 결과임을 알게 되는 것도 그 즈음부터다. 그들이 밤을 새며 일하는 이유는 단지 돈을 많이 버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바로 이런 것들을 ‘가치’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서 값어치, 쓸모와 비슷한 말이다. 물론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가치’라는 단어는 추상적인 설명으로는 충분히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의 알려진, 숨겨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브랜드가 필요한 핵심적인 이유다. 그것은 단지 고객들의 만족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 어렵다는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보람과 쾌감은 바로 이 ‘가치’를 자각하는 과정을 통해서 공고해진다. 나 역시 그 보람의 순간들을 어렵지 않게 기억해낼 수 있다. 사장님들이 진심으로 만족했는지는 대면 시의 표정 뿐 아니라 전화 통화나 메일 한 통만으로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때로는 보너스를 주기도 한다. 그들이 수년, 수개월 동안 고민했던 문제를 나는 한 두달 안에 해내야 한다. 일을 하나 맡을 때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는다. 그러나 좋은 결과는 모든 피로를 잊게 만든다. 춤추게 만든다. 잠 못들게 만든다. 마치 그것은 마약과도 같다.

많은 창업자들이, 스타트업들이 브랜딩을 고민한다. 포장이 아니라 생존에 관한 선택임을 알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진짜 ‘차별화’가 시작됩니다
사장님들이 밤잠을 설쳐 가면서 일을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단순히 돈을 벌어 편하게 먹고 살 작정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대기업에 남거나 더 편한 길을 갔을 것이다. 때로는 거짓과 사기의 유혹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브랜드를 만들지 못한다. 정말로 자신의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고객들의 문제 해결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기어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한 마디로 ‘브랜드’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대표님들을 만날 때마다,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맨 먼저 던진다.

이 일을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브랜딩이 시작되곤 한다. 그 지점에 바로 차별화를 위한 모든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가치’라고 부른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무언가를 제공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 만족, 보람… 그리고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우리는 ‘브랜딩’이라고 부른다. 오해는 마시기 바란다. 비즈니스에서 매출과 수익은 모든 전략의 기본이 된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라 언급을 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돈이 된다고 해서 거짓과 사기를 당연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신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의 품질 역시 당연하고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브랜드를 차별화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창업과 생존이라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견디면서도, 이 일을 접지 않고 평생 해야만 하는 진짜 이유, 바로 이 일을 시작한 그 ‘이유’가 모든 차별화, 모든 브랜딩의 첫 번째 단추가 된다. 그러니 이제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자. 돈 되는 다른 아이템이 등장하면 당장 사업을, 일을 접을 것인가? 그런 분이라면 이 글을 지금 덮어주시라. 그러나 통장 잔고가 충분해도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면, 평생 이 일을 계속할 각오라면 다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시라. 바로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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