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Day / 필리핀의 첫인상

필리핀에 도착한 첫인상은 이미 예상을 했음에도 공항을 나서며 이미 뜨거운 열기를 한 번 경험했음에도 승합차의 에어컨이 제 컨디션을 내기까지의 또 한 번의 열기로 인해 그리 유쾌하지 만은 안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는 물을 주의하라는 것. 괜찮은 음식점이더라도 병에 담긴 물도 주의하라는 말에 그냥 단순한 여행은 아닐 것이란 생각을 되뇌었다.

필리핀의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직접 경험해보자는 컴패션의 취지에 선 듯 동의를 하고 온 것이긴 했지만 내심 서울에서의 반복되는 일에 떠밀려 있는 일상에서 좀 벗어나고자 했던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듯하다. 하지만 도착하고 나서의 첫인상과 호텔에 도착해 듣게 된 일주일간의 스케줄을 상세히 듣고 나서 그런 마음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함께 온 일행은 모두 스텝을 제외하고 5명이었고 나뿐 아니라 다른 4명의 눈빛에서도 그런 만감이 교차하고 있음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전체 일정을 체크함과 동시에 우리는 첫 목적지로 향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번화한 도심의 불빛을 구경할 겨를도 없이 승합차는 금세 어둠 속에서 라이트를 켰고 불빛조차 없는 좁은 골목골목을 지나 길을 잘 못 들기도 하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필리핀 빈민가의 아버지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교회에 도착했다.

마약, 술, 도박 중독에 걸린 과거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들. 하지만 그룹 그룹 모여있는 아버지들의 눈빛은 선하기 그지없었다. 이들의 공통된 이야기는 결혼을 한 적도 없이 만들어진 자신의 아이가 교회를 통해 변화는 모습이 계기가 이들도 이곳에 앉아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들은 아이들 출생신고도 컴패션이 해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고 대부분 트라이시컬(자전거)택시를 운영하거나 혹은 일일 노동자로 일을 하지만 그 수입이라는 것이 너무도 미비했다.

“우린 완벽하게 바뀐 것은 아니다. 지금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한 아버지의 말을 통해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내 삶을 돌아보게 되고 책임감이 깊어지는 과정을 어느나라의 아버지들도 모두 겪게 될 그 과정을 좀 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치르고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삶의 관점이 변화했던 그 계기들이란 것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2 Day / 아이로부터의 변화

이곳 엄마와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함께 섞여서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많이 먹질 못했다. 왠지 내가 덜먹으면 이들이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이들이 더 먹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나만 한 것은 아닌듯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바람을 뒤로한 채 이들도 많이 먹질 않았다. 하지만 남은 음식들을 집으로 싸가는 모습에서 집에 또 다른 가족이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침에 있어 뒤처지는 어린아이들이 1:1교육을 하는데도 못 따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 이유가 못 먹은 엄마와 못 먹는 아이들 뇌가 발달하지 못해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래서 뱃속부터 돌봐주고자 엄마부터도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물을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에서부터 시작해 목욕은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소소한 것에서부터 부모교육이 시작되고 있었다. 또 엄마들을 모아 비누를 만들고 뜨개질을 하고 모빌도 만들면서 소소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교육까지 함께 한다.

무엇보다도 엄마들도 존귀감을 느낄 수 있도록 아이 물품들을 9개월 동안 만들게 한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는 엄마들을 통해 자란 아이들이 성장해 다시 선생님 혹은 의사가 되어 이곳 아이들과 엄마들을 돌보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을 보며 다시 꿈과 희망을 가진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던 가난만 대물림되던 이곳에서 조금씩 조금씩 희망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현지에는 컴패션 직원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시작을 하기 전에 5년을 준비합니다. 컴패션과 현지 교회가 현지 부모들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가장 가난한 아이부터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 컴패션이 없어도 현지에서 자생적으로 시스템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생선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생선을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지인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들에게 거부감도 없애고 최소의 사회적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집을 짓는 것도 공공시설을 만드는 것도 자본이 들어와서 집을 지어주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런 아이들을 위한 부모들의 마음이 집을 짓게 되고 학교까지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아이 한 아이의 변화와 성장이 그 가정을 변화시키고 지역사회까지 변화시켜 가고 있다는 것. 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의 교육방식에서도 부모의 리더십으로 아이의 성장을 이끄는 것도 역할이 없진 않겠지만 아이들 스스로의 역량이 자리를 잡게 되면 그만큼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해 보는 것은 비단 나만의 몫은 아닐 듯하다.

3 Day / 지속성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동남아를 왔다고 하면 당연히 리조트나 호텔에서의 휴식과 힐링이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곳 필리핀을 제대로 보고 가는 것은 아닐 것이란 걸 이동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주변의 환경들을 통해 우린 이미 알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보기 좋게 꾸며진 숙소의 이면에 그 동안 보려 하지 않았던 이곳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과 함께 농구를 했다. 무더위와 흙먼지 속에서 지칠 줄 모르고 재잘거리며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의 이곳 아이들의 모습이 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청년이 되기도 하겠지만 대물림 된 가난의 한계 속에서 살게 될 이들의 부모들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은 잠시의 먹먹함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같은 출발점이란 것은 애초에 없었고 그런 다른 출발점에서부터 아이들은 환경에 떠밀려 다른 결과를 초례한다. 아이들은 매 순간 자라며 새로운 출발점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매 순간 자신들도 모르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에 선택돼 어느새 어른이 되고 나면 그 간극은 이루 말 할수 없이 커지게 되는 것 같다. 지속적 양육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깨닫는 순간이다. 어쩌면 나는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 수십 킬로를 날아 온 것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세상이 공평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아이들에게 한 부분만이라도 같은 선상에 설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였던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여러 곳을 방문했고 한 가정의 아버지가 일하는 직장에도 어렵게 허락을 구해 방문하게 되었다. 가구를 제작하는 회사라고는 했지만 막상 가보니 버리는 나뭇조각들을 주워 가구를 만드는 곳이었다. 그래도 직장을 다니는 몇 안 되는 아빠를 만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가정은 우리가 방문했던 여느 다른 가정보다 그나마 잠잘 곳이 아늑했고 나름 집의 구색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집의 아이들은 그래도 부모의 지속적 양육을 통해 여타의 다른 필리핀 아이들보다는 기회가 많은 상황에서 자라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섰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와 마주친 것만으로도 여행은 할 일을 다 한듯하다.

4 Day / 동기부여

“내가 방탕한 삶(갱, 마약)을 사는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늘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딸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났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딸이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고 딸의 아픈 곳을 치료해주고 지속적으로 식사를 제공해주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필리핀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돌봐지는 과정 속에서 하나둘 아빠들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런 아빠들이 모여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던 중에 그렇게 학교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아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우리가 보통 고기를 잡으면 큰 고기는 먹고 작은 고기를 놓아주지만 필리핀에서는 반대인듯하다. 아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양육을 통해 아빠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동기부여를 하는 셈이다.

아버지가 집에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매우 달랐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마약과 도박 같은 환경에 노출이 된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들 중에 아이의 변화로 인해 삶이 바뀌는 분들이 있다. 우리도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삶을 달리 바라보는 계기가 생기듯 이곳 아버지들도 그 변화가 생각보다 큰 것이다.

아이들의 맑은 눈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5 Day / 내가 행복해지는 순간

“후원자가 어떤 이야길 해주면 좋겠니?“

라고 마지막 날 후원을 받는 아이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소녀에게 물었다.

“후원자가 처한 힘든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 좋겠어요. 매일 기도해 줄 수 있으니까요”

그 소녀의 대답은 이렇게 돌아왔다.

무엇이 가난일까?
무엇이 불행일까?

물질적 부족함만으로 가난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늘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삶 혹은 늘 무시당하는 외로운 삶과 같은 비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가난도 가난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나에게 다시 질문을 해 본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내가 아닐까?”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우리에게 행복이란 것에 관해서 정말 중요한 것들이 희석된 상태는 아닐까?’

일주일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돌아와서의 상황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게 있던 문제들이 해결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출근길이 사람들이 예전과는 조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굳이 말을 하자면 이전보다 조금 더 관대해졌고 사람들 틈 사이에서 안 보이던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고 내게 말을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좀 더 귀 기울이게 된 듯하다. 큰 변화가 아닐 수 있어도 약간의 관점이 바뀐 것에 세상이 달리 보이게 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필리핀 아이들의 맑은 눈빛은 그렇게 나의 하루에도 변화의 물결을 몰고 온 듯한다.

말랑말랑하진 않지만 
섬세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작가

지금은 14년 광고대행사를 다니면서 얻은 ‘관찰력’의 내공으로 아들의 의중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아내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아빠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기록해 SNS의 수십만 독자들과 만나고 부모강연을 통해 공감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또 기업들과 다양한 결과물들을 만들고 있는 작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 <천천히 크렴>, <똑똑똑! 핀란드 육아>, <완벽하게 사랑하는 너에게 / 뻔하지만 이 말밖에>가 있고 번역서로는 <내가 아빠에게 가르쳐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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