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당근!”

요즘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다. 때로는 카톡 소리보다 더 자주 들리기도 한다. 와이프의 폰에서 쉴새 없이 들리는 이 소리의 정체가 나도 궁금했다. 새로운 메신저 서비스냐고? 아니다. 그냥 중고거래 서비스(앱)이다. 놀라운 건 와이프가 그 전에는 중고 거래를 거의 해보지 않았다는 것. 그런데 최근엔 거의 매일 거래를 한다. 거래 내역은 더 놀랍다. 3000원을 받고 바람막이 점퍼를 판다. 5000원을 주고 식칼 세트를 산다. 500원을 받고 쓰지 않던 일제 파스를 판다. 다름 아닌 동네 기반의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이 앱은 설계 자체가 반경 6km 인근의 주민들이 올린 제품들만 검색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름도 ‘당근마켓’, 그러니까 ‘당신의 근처’란 뜻이다. 카카오와 네이버 출신의 두 대표는 ‘슬리퍼를 끌고 나와 거래를 할 수 있는’ 중고 직거래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사내 벼룩 게시판의 활성화된 모습과 지역별로 활성화된 ‘맘까페’에서 그 가능성을 읽었다고 했다. 지역과 동네에 특화된 중고 거래 서비스인 셈이다.

동네 직거래의 편리함으로, 중고 거래의 불편을 넘다

사실 처음 와이프로부터 이 서비스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때 누가 이런 거래를 할까 싶었다. 그런데 바람막이 점퍼를 산 동네 사람은 벤츠를 끌고 왔다고 한다. 명품 브랜드 모자를 3000원에 사러 온 사람은 아우디를 끌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거래에 흡족해했다고 한다. 기존의 중고거래 서비스를 ‘지역’의 제한을 두어 쪼갠 셈인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 그 제한이 ‘불편함’이 아닌 전에 없던 ‘간편함’과 ‘안전’한 서비스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이 앱의 다운로드 수는 100만을 넘어섰다. 월간 거래액은 43억 원으로 전년 대비 8배 성장했다. 매달 올라오는 거래 글 수만도 약 54만 건에 이른다고 한다.

 

와이프가 그동안 103개의 집안 물건을 팔았다.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 아닌가.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거래하는 대상들이 대부분 인근 주민들이다 보니 재미있는 후일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당근’의 거래를 마치고 온 와이프가 손에 베트남 커피믹스를 들고 왔다. 싸게 줘서 고맙다며 커피를 챙겨주더라는 것이다. 이후로 이 아줌마는 와이프의 좋은 중고거래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관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확실히 기존의 중고거래 서비스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경험이다. 사기만 당하지 않아도 성공인 중고거래가 이런 뜻하지 않은 훈훈한 ‘관계’들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내심 놀라웠다.

거래를 넘어 관계로, 편리함으로 넘어 친밀함으로

게다가 거래 금액이 낮다 보니 사기 거래의 위험성도 낮았다. 직접 만나서 하는 거래가 대부분이라 복잡한 결제시스템도 불필요했다. 와이프는 구매를 결정하기 전에 이전의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이 전에 무얼 얼마에 팔았는지를 확인하고 나서 거래를 결심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제로부터 받은 골프 웨어를 하나씩 올리자 갖고 있는 다른 옷들을 한꺼번에 팔라며 동네 아줌마가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날 그 아줌마는 흡족한 표정으로 우리 집 현관문을 나섰다. 물론 와이프도 만족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이 앱의 사용자당 평균 방문 횟수는 무려 25회에 이른다고 한다. 평균 일 체류 시간은 18분 46초에 달한다. 페이스북의 40분, 인스타그램의 25분과 비교해도 놀라운 기록이다. 한 번 거래한 사람과 재거래 하는 확률은 10% 정도, 같은 동네이니 재거래로 이어지기 쉽고 채팅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니 운이 좋은 서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런 모습들을 와이프의 경험을 통해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게 바로 진짜 ‘브랜딩’이라고.

 

‘거래’ 이상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남다른 서비스는 언제나 ‘남다른 철학’에서 온다. (*이미지 출처: ‘더농부’ 블로그)

 

왜 그들은 고급 외제차를 타고 와 3000원짜리 바람막이 점퍼와 모자를 사 간 것일까.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기름값이 더 들었을 수도 있다.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벼룩시장을 우리가 찾는 이유는 단순한 ‘필요’ 때문이 아니다. 몇백 원, 몇 천 원짜리 거래를 통해 얻는 소소한 기쁨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흥정을 하고, 설사 버릴지라도 부담 없는 즐거운 거래를 하는 과정 자체가 그들에 ‘필요’ 이상의 ‘만족’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경험들이 ‘관계’를 만들어내고 이는 다시 자연스러운 ‘입소문’을 만들어낸다. 중고거래가 가진 ‘위험’을 이토록 즐거운 ‘경험’으로 만들어낸 것은 과연 의도된 것이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당근이 만들어낼 이후의 행보들이 아마 그 답을 대신해줄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은 ‘작은’ 이 중고 직거래 서비스에서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그 핵심에 ‘쪼개기’를 통한 ‘브랜딩’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핍과 제한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다

창의성은 ‘풍족함’이 아닌 ‘결핍’과 ‘제한’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이자 장사의 신으로 불리는 우노 다카시는 일부러 골목 깊숙한 곳, 유동 인구가 작은 곳에서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 결핍이 절박함을 만들어내고, 그 절박함이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거의 모든 시장은 포화 상태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공급과잉으로 인한 저성장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뉴노멀 시대’의 현실이다. 무엇을 하든 어느 업종이든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독점한 경쟁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다. 시장을 쪼개고, 고객을 쪼개고, 제품과 서비스를 쪼개는 것이다. ‘당근’이 ‘사내 벼룩시장’과 ‘맘까페’를 통해 지역 기반의 거래 시장을 사업 모델로 만들었듯이. 다른 중고거래 서비스가 결제의 편리함과 더 많은 제품과 카테고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들은 전혀 다른 ‘반대쪽’의 길을 갔다. 그리고 시장을 쪼개고 또 쪼갰다.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기술이 부족해서 그랬을 리 없다. 그런 의도적인 제한이 만들어낼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네방네 막걸리’는 동네 밖에선 살 수 없다. 공덕동막걸리는 서울 마포구 내에서만 판매된다.

 

브랜딩의 시작점,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세요

브랜드를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작은’ 브랜드의 ‘작지 않은’ 이야기를 컨셉으로 잡으니 출판사에서 출간을 의뢰해오고 브런치에서 상을 주었다. 칼럼 연재 의뢰가 왔다.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브랜딩’에 엄두를 내지 못하던 회사들이 나를 찾기 시작했다. 최근 알게 된 변호사 한 분은 아예 ‘작은 기업’을 대상으로 특화해 서비스를 하고 싶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나 역시 변호사가 필요한 회사를 알게 된다면 바로 그 변호사를 연결해줄 것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처럼 각 분야에서의 이런 ‘특화’와 ‘차별화’는 여러 분야에서 가속화할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지속될 ‘뉴노멀 시대’의 생존법 중 하나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고민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누구나 하는 이 서비스, 누구나 만드는 이 제품을 어떻게 쪼갤 것인가. 시장과 고객을 어떻게 쪼갤 것인가. 모든 사람이 디지털과 모바일로 촘촘히 연결된 이 시대에는 그런 방법으로 생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동네 서점과 빵집, 작은 가게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이유가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과연 지금 내가 쪼갤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이 브랜딩의 핵심인 ‘차별화’의 시작이자 당신과 고객을 연결하는 ‘관계’의 접점이 되어줄 것이니까. 바로 거기에 작지만 작지 않은 당신의 ‘생존’을 위한 비법이 숨어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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