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필자는 어릴 때부터 서예와 펜글씨 등 글씨 쓰는 일을 좋아했다. 국민학교(현재는 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됨) 1학년 때 ‘바른생활’이라는 교과서에서 정자체로 글씨를 써 보는 시간이 있었는데 우연히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반에서 제일 잘 썼다는 칭찬을 들었고 내심 행복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무 기대도 없이 시작한 글씨 쓰기는 그저 재미로 시작했다가 전 학년 동안 글씨를 쓰는 일은 모두 필자의 몫이 되었다. 

늘 서기를 맡아 회의록을 작성하거나 칠판에 글씨를 쓰곤 했고, 하교 후에도 종이를 꺼내 선생님들의 글씨체를 모두 따라 쓰면서 글씨를 쓰는 습관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그리고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서예도 배우게 되었고 묵향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먹을 갈 때면 생각이 차분해지기도 하고 글씨를 쓰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한 글자, 한 글자에 온 정성을 쏟게 된다. 그런 습관이 밴 탓인지 지금도 생각이 복잡하거나 메모가 필요한 순간이 되면 무조건 종이와 연필을 꺼내 들고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중학교 때는 교감 선생님께서 펜글씨 반을 열어 펜촉으로 글씨를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때도 많은 칭찬을 들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필자 역시 그런 칭찬에 힘입어 글씨 쓰는 일을 계속했고, 대학 시절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받게 되었다. 사경대회 등 여러 대회에서도 수상의 영광이 주어졌다, POP 예쁜글씨는 자격증도 취득하여 공공 기관, 혹은 농아인협회 등에서 수차례 강의를 하기도 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하루도 글씨를 쓰지 않은 날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각종 포스터나 책, 영화나 드라마 타이틀에 쓰인 캘리그라피를 보면서 나는 글씨를 쓰면서 살아가는 업을 선택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시작된 글씨와의 뗄 수 없는 인연은 필자를 캘리그라퍼의 삶으로 이끌었다.

캘리그라피 과정은 무엇인가?

캘리그라피 수업은 기초-중급-고급-사범 과정으로 배울 수 있다. 

필자의 캘리그라피 시작은 2013년 겨울이다. 홍대 공간디자인 학원에서 캘리그라피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바로 학원으로 달려가 수강신청을 했다. 먹그림과 서예에 능한 김정호(묵묵히 캘리그라피)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몇 년 동안 캘리그라피와 먹그림 수업을 받으며 화실을 다녔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미술대전과 대한민국서예술대전에서도 수상의 영광을 맛보았다. 전국적인 대회이고 서예를 통해 수년간 갈고 닦은 분이 많이 참여하는 대회라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임했던 대회에서 매번 상을 받게 되었다. 

시작부터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기에 단순히 취미로만 그칠 게 아니라 자격증을 따고 캘리그라퍼로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취미로 시작한 입문에서 초급, 중급 과정을 거쳐 한국캘리디자인협회에서 발급하는 자격증을 취득했다. 

캘리그라피 자격증은 사단법인이라 여러 곳의 기준이 다르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캘리그라피 수강 이수 시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하여 심사에 통과했고, 합격자만 2차로 실기 시험이 있다. 실기 시험은 붓과 먹으로 시제를 표현하는 것이다. 장문과 단문으로 제시된 글자로 창작을 하는 과정을 통해 합격의 여부가 정해진다. 그렇게 캘리그라피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도사 과정까지 따고 싶은 사람은 강사로 활동할 수 있다. 혹은 강사가 아니더라도 캘리그라피 작품 활동을 통해 예술 활동을 이어가거나 광고 등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일할 수도 있다.

캘리그라피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캘리그라피 작품은 쓰고자 하는 글귀를 정한 뒤 구상을 한다. 창작할 때 직접 지은 글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누군가의 글을 쓰게 될 때는 창작자의 이름과 제목 등의 출처를 꼭 밝혀야 한다. 필자는 좋아하는 시나 노래 가사로 글씨를 많이 쓰기는 하지만, 작품을 만들어 판매를 할 때는 꼭 직접 지은 글로 쓰고 있다. 단, 순수한 창작으로 판매가 아닌 작품으로만 사용될 경우에는 출처를 밝히고 써도 된다. 판매할 때에는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에 한해야 한다는 것에 유의하자. 

이렇게 쓰고 싶은 글을 정했으면 어떤 서체로 작업을 할지 방향을 모색한다. 필자의 경우 판본체/ 궁서체/ 민체 등의 기본 서체를 써본 후에 변형하는 편이며 글자를 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어떤 감정을 전달하고 싶은지 그 느낌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서체가 정해졌다면 붓으로 기본적인 글씨를 써본다. 최근에 아이패드나 태블릿 등으로 작업을 하는 디지털 캘리그라피도 유행이고, 그런 작가도 많이 늘었지만, 필자는 붓이나 붓 펜 등으로 직접 글씨를 쓰고 스캔을 받아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각종 서예 도구를 꺼내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가끔은 일부러 먹 냄새를 맡고 싶어 글씨를 쓰기도 하며, 붓 펜도 다양한 종류로 많이 나와서 휴대하기에도 좋은 재료도 많이 있다. 또한 연필, 파스텔, 물감, 면봉, 화장품 등 정말 다양한 도구로 작업이 가능하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를 선택하여 작품을 만들면 된다. 

기본적으로 화선지에 붓으로 글씨를 쓴 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글씨를 써서 스캔을 받은 후에 포토샵 등으로 그래픽 작업을 할 수도 있고, 화선지에 글씨를 쓰고 전각을 찍어 작업한 종이 그대로 패널을 만들어 표구한 액자를 만들 수도 있다.

윤재선 작가의 캘리그라피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가?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 직원 작품전시회가 열렸는데 그때 처음으로 필자의 이름을 건 캘리 그라피 작품을 선보였다. 그 후에도 몇 년 동안 매회 출품을 했다. 그리고 세종이야기에서 전시했던 2015 한글일일달력전, 매년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었다. 

노르웨이 여행 사진에 캘리그라피 작품을 만들어 출력과 액자를 만드는 과정을 마치면서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까지 정말 많은 것을 배운 기회가 된 것 같다. 전시회에서 얻게 된 보람과 자부심은 각종 전시에 더 많이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고, 5인 5색 ‘사랑에 관하여’ 전시회, 필더필 전시프로젝트 ‘청춘 걸다’ 전시회, ‘묵묵히 애쓰다’ 캘리그라피 회원전 전시회 등에 참여했다. 다음은 카페나 공공기관 등에 출품한 작품을 소개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창작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힘들겠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 무한한 기쁨과 감격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제 손수 내 이름 석 자라도 글씨를 써 보면서 후대에도 남을 만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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