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치 김밥을 손님이 먹었는데, 가시가 목에 걸렸다고 한다.

참치 김밥의 참치는 참치 통조림을 사용한다. 야간 종업원이 임시처방으로, 목에 가시가 걸렸다면 밥을 삼키면 괜찮다고 했다. 손님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났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다는 것이다. 화가 난 상태로 손님은 나갔고, 다음날 전화가 왔다. 병원에 갔는데 가시를 뽑았으니, 치료비를 물라고 한다.

우리는 참치캔 회사에 전화했다. 그 가시를 가지고 오면, 변상해 주겠다고 한다. 손님에게 다시 전화했다. 가시를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말만 하고, 결국 오지 않았다.

진상 피우는 손님에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저주하곤 한다.

‘당신도 장사할거다.(자영업자가 될 것이다.)’

외식업 사장님을 보면, 풍파에 찌든 모습이다. 이리저리 치이고, 속으로 삭히고, 아무데도 호소할 곳 없다. 기억나는 진상을 소개하고, 자영업  10여년차의 감상을 말하겠다.

# 아재 손님 5명과 다투다.

아재 5명이 오랜만에 모여서 술한잔 하고, 해장으로 라면 먹으러 왔다. 라면값 4천원이 비싸다고 했다. 라면은 응당 2,500원이여한다고 했다. 한명이 깐죽거리고, 나머지가 추임새 넣는 구성이었다. 나도 아재인데, 몇살이냐?고 물을때는 어리둥절 했다.

아재들은 겁이 많다. 경찰을 나도 부르고, 그쪽도 불렀는데, 나는 손님이 술먹고, 횡포에, 반말에 욕을 한다고 했다. 그쪽은 내가 불친절하다고 신고했으나, ‘불친절’정도로는 출동할 수 없다고 하여 출동 나오지 않았다.

내가 부른 경찰이 왔다.

그 와중에 동영상으로 죄다 찍었다. 진술을 하며, 배경음으로 그들의 욕설을 틀었다. 경찰이 끄라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볼륨을 줄였다. 욱일승천하던 아재들은 온순해졌다.

무리중 대표 아재가 내 손을 잡으며 사과했다.

난 한국 외식업에 자부심이 있고, 외국인 상권에서 한국음식을 소개한다는 사명까지 있다. 외식업을 비하하고, 종업원 앞에서 고압적인 몇몇 아재들의 태도는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응당한 이야기라며, 사과하고 읍하고 갔다.

# 새벽에 취객이 테이블에서 자고있길래, 깨워서 내보냈다.

이 사람은 다시 돌아오더니, 기분이 나빴는지 나에게 욕을 했다. 멀쩡하게 생긴 30대 중반 남자다.

실랑이가 있었는데, 경찰이 왔다. 경찰을 보자, 말투가 공손해졌고, 나를 칭하는 말투도 ‘이 새끼’에서 ‘이 분’으로 바꼈다. 욕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려는 제스츄어를 취했고, 나와 종업원이 두려움을 느꼈다고 경찰에게 술했다. 그는 ‘내가 음식값 안냈냐고?’ 눈을 부라렸고, 경찰분은 ‘떽.가만있어요’라고 했다.

공포조성했다는 명목으로 스티커를 발부했다. 그는 나를 가르키며, 저 사람도 욕했다며, 고소한다고 했는데 묵살당했다. 딱지 끊기는 처음이라며 분해했고, 난 그 모습에 기뻤다.

2시간 뒤에 경찰분이 다시 왔다. 상대방이 자기만 딱지 끊은게 너무 분하다는 이야기다. 그쪽 사장도 욕하고, 위협적으로 나왔다고. (맞다. 경찰 도착까지 온갖 행패를 받고만 있을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저도 끊으세요. 딱지.’

경찰분은 놀랍게도 ‘미안하다’며 나에게 사과했다. 자신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만, 법法이 그러기에 어쩔수 없다는 표현이었다. 50대 머리가 허연 이 분이 참 사랑스러웠다.

# 갑질 당한 것, 똑같이 갑질로 푸시네.

새벽에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니?’
‘사무실이요’
‘손님이 순대국에서 먹던 깍두기가 나왔대’

난 메모지에, ‘순대국, 먹던 깍두기’라고 쓰고, 알겠다고 했다. 사촌 누나인데, 내가 운영했던 순대국집을 맡아서 운영중이다. 새벽이라 집에서 자던 중에, 가게에서 전화 받았다고.

현장에 가니, 30대 초반 남자 둘이다. 술이 알딸딸하게 취해있다. 종업원에게 윽박 지르며, 사장을 찾았다.

‘전데요. 어떤 일이신가요?’

(몸이 다부진)남자인 나를 보자, 약간 누그러졌다.
‘음식에 이런게 나오면 어떡해’,
이빨 자국이 선명한 깍두기를 가르켰다.

이상한 것이, 팔팔 끓는 순대국에서 나왔다면, 무우가 익어서 허옇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추가루가 그대로 묻어있었다. 본인이 먹던 것을 술에 취해서, 순대국에서 나왔다고 우기는 상황이 한눈에 파악됐다.

말이 안통한다. CCTV 보자고. 자신은 깍두기에 젓가락을 댄적이 없다고 했다. CCTV를 보니, 깍두기를 집어서 먹는 모습이 희미하게 포착되었다! 반찬은 깍두기 밖에 없다. 젓가락을 들었다면 깍두기를 먹기 위함이다.

‘젓가락 들고 계시네요’라고 하자, 술잔이라고 우긴다. 그 말에 나도 말투가 날카로워졌다.‘아저씨 눈이 이상하시네. 당신 눈에 이게 술잔으로 보여?’ 사기죄로 고발한다고 하자, 고발하시라며 깐죽댔다.

한 시간동안 CCTV를 몇번이고 돌려보았다. 그 사이에 상대도 술이 깼다. 이런 상황이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 일어나면, 급한 마음에 사과부터 하고본다. 다행히 손님이 없는 새벽시간에 일어나서, 천천히 증거를 대며 방어할 수 있었다.

누나가 왔다. 술꾼을 다독였다. 근처에  호텔이 있다. 그곳 직원인가 보다. (유니폼티를 입고 있었다.) 0000호텔 다녀요?라고 하자, 그렇다고. 갑질 당한 것, 똑같이 갑질로 푸시네.

남자 둘은 계산하고, 어깨를 떨구며 갔다.

# ‘음식 장사는 할것 없으면, 마지막에 하는거야’

10년전 음식장사 시작하는 내게, 사촌형은 이야기했다. 그는 고깃집을 운영중이다. 나이가 50이 넘고, 시집 보낼 딸이 있다. 장사 현장에서는 그도, 애취급 당한다.

‘어이, 사장, 일루와’

이런 말 들으면, 형은 참 괴롭다고 한다. 음식점 사업, 그 중에서도 고깃집은, 마음 수양하는 사업이다.

음식 장사가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면, 음식장사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이 고정되어있기 때문일까? 온순하신 분들도, 음식점에서 직원을 대할때는 고압적인 태도가 된다.

# 15만원을 벌려면 순대국을 얼마나 팔아야 할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순대국집을 운영한다. 60대 남녀들이었다. 한분이 본인의 점퍼를 옆자리에 놓았고, 같은 라인 테이블에서 다른 손님들이 곱창전골을 주문했다. 어느 순간 점퍼 손님이 자기 옷을 보더니, 목 주위가 불에 그을렸다는 것이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곱창전골을 써빙할때 순간적으로 닿았기에 탔다는 것이다.

눈을 부라리며, 쥐잡듯이 어머니를 다그쳤다. 당장 물어내라며, 호통이다. 일제 시대 고등계 형사도 이렇게 기고만장할까? 연락을 듣고, 내가 가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이것은 직접 라이터불로 지지고 한참 있어야 꺼멓게 타서 부스러집니다. 순간적으로 냄비 바닥에 스쳤다고 이런식으로 타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누가 보나 상식이었다. 점퍼 손님이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너는 누군데’ 라고 말하였다. ‘사장’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허허 사장이 둘이야.  당장 영업신고증 가져와.’ 주위를 둘러보더니, ‘영업 신고증, 사업자 등록증 안붙어 있네. 이놈들 잘걸렸다.’

경찰을 불렀다. 내가 경찰을 부른 것은 상식을 상식이라고 3자의 입장에서 말해줄 사람이 필요해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시비를 가려주지 않았다. 사건경위를 듣고는, 어떻게 처리해주길 바라냐며 물을 뿐이다. 노련해 보이기만하는 경찰의 말에 나는 짜증이 났다. 점퍼 손님도 경찰까지 부른 모습에 한층 흥분했다.

‘그렇다면, 제가 잘못했으면 점퍼를 물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영업 방해하신 것에 책임을 지세요’라고 나는 말했다.

그들은 ‘영업 방해’라는 말에 또 뒤집어졌다.

경찰 둘중 젊은 사람이 다가왔다.  잠깐 보잔다.

‘사장님 지금 이렇게 큰 소리칠때가 아니에요. 저 사람들 걸고 넘어지면, 몇백만원 벌금 나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찰들도 귀찮고 짜증나는 것이다. 어서 빨리 그들도 이 국면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돈주면 빠르고, 깨끗하게 끝난다.

점퍼 손님은 점퍼 수리비로 60만원을 불렀다.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온다. 울상을 짓자, 선심 쓰듯이 30을 불렀다.

‘선생님, 제가 5만6천원 팔고, 30만원 물어주면, 제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15만원 드릴테니, 각서를 쓰시라고 했다. 쓰긴 하겠는데, 대신 이름 석자는 못쓰겠단다. 150만원도 아니고, 기껏 15만원에 자기 이름을 쓰냐는 것이다. 옆에 같은 편 여자가 어서 15만원 찔러주라고, 눈에 뛰게 귀뜸해주셨다. 찔러주자마자 그는 갔다.

초로의 어머니는,  이 광경에 발을 동동 구르며 우셨다. 그녀는 장사 경력 30년이다. 15만원을 벌려면, 순대국을 얼마 팔아야할까? 참, 살기 싫어지는 순간이다.

# 이날 결심했다.

천직으로 생각했던 외식업을 천직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외식업의 비전은, 외식업을 빠져나오는 것이다. 모든 산업은 변하고 발전한다.현업만 고집한다면, 시장은 줄고 비용은 늘어난다.

삼성이 지금도 설탕만 팔고 있다면, 세계 기업이 될까? 현대가 여전히 쌀만 팔면, 오늘의 현대가 있었을까?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건, 종자돈을 모아서 다른 사업을 하건, 외식업은 시작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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