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입시학원 원장님을 소개로 만났다.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특이한 것은 ‘한예종’ 입시 전문 학원이라는 점. 가장 좋아하는 김애란 작가가 한예종 출신인 것은 알았지만 그때까지도 어떤 학교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나중에서야 연극영화과 지원자들에겐 선망의 대상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는 나로서는 잠시 망설여졌다. 망설임 끝에 신사동의 다소 허름해 보이는 4층 건물에서 그 원장님을 만났다.

이 학원은 최근 한예종 특별 전형 합격자 8명 중 6명을 배출했다. 비결을 물으니 ‘합격할만한 학생’을 모은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 대단하다. 합격할만한 학생을 알아볼 만한 안목을 가진 셈이니 말이다. 물론 시장은 턱없이 작다. 한예종, 그것도 연극영화과를 지원하는 학생은 한 해에 800명 남짓, 하지만 이 작은 시장에서 ‘압도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니 학원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지금은 전국 3,000여 연기학원 중에서도 가장 개성 있고 차별화된 ‘한예종 입시 전문 학원’으로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무엇이 이 학원의 이런 ‘차별화’를 가능하게 했는지가.

답은 창업자에게 있었다. 그 자신이 한양대와 한예종 대학원을 나온 원장은 ‘연기’는 자신의 길이 아님을 일찍 깨닫는다. 그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장점이 있음을 깨닫고 학원 강사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철저하게 학교와 교수 입장에서 기본과 정석을 가르치는 일에 올인한 것이 성공의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매우 집요하고 절실하고 디테일했다. 우선 수년 동안 학원에 자리를 깔고 숙식을 해결할 정도로 이 일에 올인했다. 그리고 그 ‘날 것’ 그대로의 경험을 900여 개의 블로그 글로 옮겨 썼다. 교열과 윤문을 거치자 출판사가 탐낼만한 단행본 원고가 됐다(메이저 출판사 출신 편집자 두 분과 책을 내기로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업이 ‘브랜드’가 되길 바란다. 비슷한 업종의 누구보다도 차별화되길 원하고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도 경쟁력을 갖춘 ‘진짜’ 브랜드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브랜드는 언제나 차별화된 스토리를 원한다는 것을. 입소문은 결국 그 이야기가 좀 더 쉽게 전해지는 과정에 불과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만큼’ 차별화된 스토리가 없다면 그 외에는 (거의) 모두 광고다. 그리고 이 땅의 그 누구도 광고에 시간과 비용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초점은 분명해진다. 브랜드가 되려면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가 없는 브랜드는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작은 브랜드라도 이야기가 있으면 가능성이 있다.

이 학원 원장님의 글쓰기 방식은 다소 독특했다. 원생들에게 정말로 ‘이야기하듯’ 썼다. 때로는 호소하고 야단도 쳤다. 대신 매일 열심히 썼다. 때로는 몇 개의 최신 글이 ‘쓰는 중…’으로 올라와 있기도 했다. 쓰러질듯 지친 날에도 쓰기를 ‘지속’한 것이다. 완벽한 하나의 글을 쓰기 위해 결국은 단 하나의 글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이 결국 천여 개에 육박하는 다양한 글들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나 같은 편집자에게 매력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으며, 결국 출판으로 이어지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제품도 많다. 서비스도 많다. 그러나 귀를 쫑긋하게 하는 ‘남다른’ 이야기는 언제나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귀를 세우게 한다. 좀 더 민감한 소비자와 전문가의 이목을 집중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제품과 서비스는 잘 되니까 따라 하려는 이들에게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집요함과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는 절대로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짝하는 성공은 오히려 쉽다. 그러나 수십 년을 가는 진짜 브랜드는 숙성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 발효의 과정을 거친 이야기는 반드시 자신만의 ‘향기’를 만들기 마련이고, 뭇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브랜드’로 남을 수 있다.

당신은, 그리고 당신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는 그런 이야기를 갖고 있는가.

글 | 박요철
비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브랜드 스토리텔러
brunch.co.kr/@aiross
hicle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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