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 마담입니다

“ooo 씨, 오늘 회사 직원들에게 인사 메일 쓰세요.”

아 나를 어떻게 소개하면 될까?
독한, 기센,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쌘 언니’
나는 뭔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톡톡톡…
인사말을 써 내려갔다.
‘입사 전 저는 … 이렇게 일했고 지금은 이렇게 입사를 했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마무리에 임팩트가 필요했다.
나를 대변하는 이미지, 첫인상 머릿속에 박힐만한 한 단어를 생각해냈다.

‘박 마담’

그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첫번째 의미는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의미보단 부정적인 의미를 표방하기도 하지만 본 어원으로 부인, 마님 경칭에 붙이는 말이다. ‘ Madame Curie ‘ 퀴리 부인처럼 여성을 높이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니 스무 살 즈음에 젊은 혈기로 나는 어떤 것도 밀리지 않기, 일이든 주량이든, 어떤 것도 성에 얽매이지 않고 동등하게 소통하기 위해 갖춰야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술은 남들보다 못마시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 별명을 연상하기에 부합하는 이미지였던 것, 이야기를 듣고 포용하고, 소통의 준비가 된 사람으로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갔다.
또 하나의 의미는 무언가 다른 내면을 갖고 있는 듯한 그녀, 완벽해 보이는 외모, 그 안에 있는 내면의 반전 친절한 ‘금자씨’ 의 이미지를 가지고 싶었던 것 같다.
 항상 철저히 내모습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어떤 경우에서건, 야근을 하건, 회식을 했건, 풀메이크업한 얼굴과 깔끔한 옷차림, 그리고 제일 중요한 시간관리 또한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철칙이 되어갔다.
약간은 쌀쌀해보이는 표정, 첫인상의 내가 그렇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내면은 친절한 이미지인 박 마담의 직장생활은 첫 스타트를 끊었다.

“안녕하세요~ ‘박 마담’입니다.”
회사 모든 직원이 포함된 회사 메일,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긴 소개 글의 끝에 나는 약간은 무리수일지 모를 그 단어를 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별명은 13년간 일한 서울의 첫 직장에서 그리고 오랜 기간 나를 대변하고 나의 이미지를 만들어준 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무엇이든 해내길

“실장님, 제가 이건 익숙지가 않아서 알려주시면 잘해보겠습니다.”

2년간 경력을 쌓은 일이 아닌 새로운 분야의 시작!
그렇게 원하는 대기업 간판을 얻고 입사했지만 어디서 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대기업이라 우아하게 손까닥만 하며 일한다?’그런 일 따윈 없었다. 업무환경은 좋았지만 일의 내용은 그 전과 다르지 않았다.

지방 호텔 일을 시작한 신입 때 ‘맨땅에 헤딩’을 해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수는 없었고 디자이너가 하는 일에 대한 업무리스트가 없던 때 나는 그 안에서 내 일을 찾고 인지시키고 만들어 내는 일들을 수없이 해오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었다. 디자이너의 업무리스트 외주의 일과 내부의 일의 분리,그리고 윗분들을 설득시키는 일까지 신입인 내게 온전히 남겨진 숙제였다. 

문득, 그때가 생각나 퇴근하는 저녁 다 놓아버리고 싶었던 날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 안에 묘한 오기 같은 게 있었다.
‘여기서 손들고 나가면 어디 가서도 또 포기할 거야.’
처음 하는 일들이 많은 몇 달 동안 익숙하지 않은 프로그램과 판단이 서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모르면 물어보고 시간이 필요하면 야근하고 새벽까지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 회사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달 나는 그 일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또 다른 직무가 맡겨지게 되었다.

지방에서의 2년간 경력을 기반을 둔 일들이 나에게 주어진 것!
직무 변경에 나는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애초에 나는 그렇게 일이 주어지기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았다.
물론 2년 경력이 기반이 있었지만 또 새로운 직무의 시작이었다.

좌충우돌 또 다른 직무의 시작

또 다른 업무가 시작되었다.
현장에 나가 접하는 일들, 원래의 디자이너로서의 일을 해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현장 실무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ooo 씨는 건축과야? 토목과야?”
머리에 띵하고 경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나 디자이너인데… .”

현장과의 소통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본연의 업무보다 소통을 위한 일들, 다이나믹하게 바뀌는 현장상황에 맞게 새로운 일들을 헤쳐나가야 했다. 이렇게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내 생각과 달리 그 일은 내가 생각하던 나의 모습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가?
뭐부터 바꿔야 하지?

‘외모, 체크리스트, 도구, 미팅 준비’

운전을 못하는 나는 늘 대중교통으로 많은 곳을 다녔다.
운동화에 청바지면 좋을 현장방문 복장을 포기하고 킬힐과 세미 정장을 입고 현장에 나갔다.
눈에 보이는 나부터 시작해서 현장과 미팅을 위한 리스트를 작성하고, 체크를 위한 전문가들이 쓰는 도구, 그리고 업체 미팅시 필요한 질문사항까지 철저하게 체크하고 현장을 방문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와 문제들이 생기고 해결하는 과정들을 꼼꼼히 체크하고 만족스럽게 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 없는 분야였던 그 일은 누구도 판단해주기 어렵고 큰 예산이 들어가는 일들이라 판단을 위해 현재의 트렌드도 읽어야 했고 누군가의 자문도 필요했다.
세미나, 전시회를 돌아다니며 리서치를 했고 서울에 와있는 선배들, 학교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가며 질문과 답을 찾아가며 나는 이 분야에서만큼은 이 회사에서 가장 지식과 경험이 많은 사람이 되어가도록 노력했다.

너무나 더웠던 여름, 지방에서 한 달을 현장과 함께 생활하며 해야 하는 업무가 주어졌다.
한 달을 타지에서 그들과 함께 보내야해서 약간의 고민은 됐지만 내가 남자라면 어디든 쉽게 보냈을 것, 여자라 장기 지방 출장을 못 간다는 말은 듣기 싫었다.
그 당시 회사에서 큰 비용 투자와 지방 매장 확대를 위해 이슈로 삼았던 대형 매장을 오픈하면서, 나는 무엇이든 해내는 ‘박 마담’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에 흔들리지 않기

일을 하다 보면 그 일이 아니라 사람이 힘든 순간이 많다.
좋게 시작한 일도 그 끝에 질책이 있기도 하다.

“ooo 씨는 지방대 출신이라 …?”
“그래서 결과가 생각보다 이런 거야”
“그러면 그렇지, 내 생각이 맞아.”

나의 자격지심일지 모르겠지만 한마디를 하면 그 안에 생각을 읽게 된다.
꼭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같은 말한마디와 그 눈빛에 나는 흔들렸던 것 같다.

직장생활에서 답을 내기 못하는 것은 내 죄였고 질문에 대답이 떨어지지 않는 나는 당황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 질문을 하던 상사는 학벌에 대한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를 몰아세워 가르치려 한 것인지 단순히 그 말로 자신을 세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살다 보면 본인의 잣대로 나를 재려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으로 나를 보는 사람들, 실제로 그들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상사에게 보고하기 전 나는 늘 준비했다.

! 무엇을 궁금해할까 질문을 만들 것
! 답을 미리 준비할 것
! 그리고 다음 단계를 제안할 것

그렇게 쉽게 던진 말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준비하며 살았다.
그들의 말에 상처받고 흔들리느니
나는 시원한 답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쪽을 택했다.

나는 무엇이든 해내는 박 마담이니까!

by 박 마담의 ‘슬기로운 여성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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