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미흥의 한국 아빠들

아내의 오랜 친구의 남편이 베트남 회사의 지사장으로 발령 난 지 1년이 지났다. 몇 개월 뒤 아내의 친구 역시 딸아이와 함께 베트남으로 갔고 이후에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나서 우리 가족을 베트남으로 초대했다. 미세먼지로 인해 봄이 반갑지마는 않았던 요즘 베트남에 도착해 호찌민 공항을 빠져나오며 동남아 특유의 공기가 뜨거웠음에도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로 인해 오히려 반가웠다. 베트남이 처음이었지만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벌떼처럼 몰려다니는 것 외엔 예상했던 동남아의 풍경과 사뭇 다르지는 않았다.

마중을 나와준 친구의 남편분이 택시 밖 풍경에 대해 간간이 설명을 해 주었다

“베트남은 한때 프랑스령이었고 미국과의 전쟁에서 베트남 공산당이 승리하긴 했지만 당시의 미국의 영향도 많이 남아있어 도심 곳곳에 베트남의 문화와 함께 서구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구조의 나라예요. 수도인 하노이는 좀 덜 하지만 이곳 호찌민(사이공)은 특히 더 그렇죠. 시내 곳곳의 건물들이 프랑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건물들도 있고 실제 프랑스의 벽돌까지 옮겨와 그대로 지은 건축물도 많아요”

택시에서 베트남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니 금세 푸미흥이란 곳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파트의 맨 위층이었는데 그 첫인상에 좀 놀랐다. 펜트하우스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넓은 두 층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소파가 놓인 응접실만 3개나 됐다) 집주인은 따로 있고 세를 내고 있다고는 했지만 (물론 주재원이다 보니 회사에서 집세를 지원해 주긴 한다.)  이 아파트에 도착하기까지의 소소했던 베트남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집 내부의 스케일은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놀라움을 뒤로하고 짐을 풀기도 전에 우리는 식사를 하러 바로 아파트를 나왔다. 우리가 머물게 된 푸미흥은 주재원뿐만 아니라 여러 이유로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한인 밀집 거주 지역이다. 주변을 돌아보니 한국과 별다른 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한국의 음식점, 빵집, 커피숍들이 한국어로 된 간판을 내 걸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머무는 동안 한 번은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한국보다 더 괜찮은 짬뽕과 탕수육을 먹으며‘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일주일을 머무는 여행자의 짧은 견해일 뿐이었다. 베트남에서의 새로운 삶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와 앞으로 가족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지금까지의 생각들이 타이거(베트남맥주)의 몇 번의 목넘김과 함께 시작되었다.

“ 최근 10여 년 동안 여러 분야에서 한국과 베트남은 교류가 활발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곳에 한국 기업들의 주재원들이 많이 머물게 되었죠.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 주재원 분들도 많이 있지만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던 주재원들도 다시 베트남으로 찾아온 경우도 있고 이곳에 더 있고 싶었지만 여력이 안 되어 가족만 남겨두고 기러기 아빠로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 가족도 많습니다. 아예 퇴사를 하고 베트남에서 세탁소나 음식점 같은 한국인을 상대로 제2의 인생을 사는 한국인 분도 많이 있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베트남은 외국인 학교가 잘 되어 있고 아이가 크면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을 들어가는 것도 한국보다 수월해요. 결국 아이들 교육 때문이죠. 그런 문제로 베트남을 선택하게 될 한국인들이 앞으로도 더 많아질 거라 생각해요.”

베트남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나라의 성장 동력이 되는 30대 인구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유독 많아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나라이다. 특히 교육의 측면에서 2016년 12월 6일에 발표된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의 특징을 살펴보면 싱가포르가 1위, 일본이 2위, 에스토니아가 3위, 대만이 4위, 핀란드가 5위, 마카오가 6위, 캐나다가 7위, 베트남이 8위, 9위가 홍콩, 10위가 중국이다.(한국은 11위다.) 열정적 교육열을 보이는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에스토니아, 핀란드, 캐나다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물론 2009년까지는 핀란드가 계속 1위였다.) 경제수준이 절대적으로 떨어지는 베트남이 유럽 국가 거의 모두를 제치고 타이거맘의 발원지인 동아시아 국가들을 위협할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보면 베트남 자체의 교육열도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야 할 시점이 되면서부터 생기는 새로운 동력은‘자식의 미래’인 것 같아요. 그런 이유에서 우리 가족 역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된 샘이고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 역시 저와 비슷한 이유가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을 하나씩 하나씩 발견해 가는 것으로 위로받으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네요.”

매일매일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안정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 특히 나이가 들수록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곳의 한국부모들은 젊을 때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모험을 자식이란 새로운 동력을 통해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생기면서 새로운 환경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긴 하다. 한국에서도 아이가 태어나면 시부모님이나 장모님댁으로 가까이 이사를 한다거나 학교를 들어갈 즈음이면 아이의 교육문제로 이사를 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푸미흥의 한국 아빠들은 그 생각을 좀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고정관념이란 얘기를 많이 하는데 관념은 결코 고정되어 있을 수 없다.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의 세대보다 더 큰 변화들을 겪게 될 테니 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충분한 위밍업 시간을 주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물론 베트남에서 살겠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만난 가족 역시 베트남에 와서 몇 개월 동안 여러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푸미흥의 아빠들은 새로운 환경에 대한 공포 그리고 베트남에서 돈벌이가 잘 될지에 대한 걱정과 무엇보다 익숙한 한국에서의 생활을 내려놓아야 하는 두려움 그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고 자식을 동력으로 미래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의 결실은 어쩌면 그런 절박함의 황무지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인간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한 것에만 머무는 것은 젊은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지금의 나 역시도 새로움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떠밀려 새로운 삶을 찾아야 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일을 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것을 찾는다고는 하지만 무엇을 행동에 옮겼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정표도 보지 않고 살다가 이정표를 보기 시작하고 아빠가 되고 나서는 오히려 이정표를 만들어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곳 한국 아빠들의 모습을 보며 나에게도 그럴 용기가 아직 남아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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